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9)

좌파도서관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3.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9)

무정부주의자들의 둘째 “비난”은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혁명가가 아니며 당신들은 폭력적 혁명을 부인하고 오직 선거에 의하여 사회주의를 수립하려 한다고 무정부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들어 보라:


… 사회민주주의자들은 … ‘혁명’, ‘혁명투쟁’, ‘무장투쟁’을 논하기를 즐겨 한다. … 그러나 만일 당신이 순진하게도 그들에게 무기를 요구한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선거 때에 쓸 투표지를 엄숙한 태도로 내여 줄 것이다. …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혁명가들에게 알맞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전술은 자본주의나 기성정권이나 현존하는 전체 부르주아 제도에 충직할 것을 맹세하는 평화로운 합법적 의회주의이다." (논문집, ≪빵과 자유≫, 21, 22-23페이지를 보라.)


그루지야의 무정부주의자들도 역시 같은 것을 더 뻔뻔스럽게 말하고 있다. 바톤을 실례로 들어 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체 사회민주주의가 … 공공연하게 성명하는 바에 의하면 소총과 기타 무기에 의한 투쟁은 혁명의 부르주아적 방법이며 다만 투표지에 의해서만, 총선거에 의해서만 당들은 정권을 쟁취하고 다음에 의회 내의 다수파와 입법권을 통하여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탈취≫, 3-4페이지를 보라.)


무정부주의자 제씨는 맑스주의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비난”에는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여기서도 역시 자기의 무지와 허위선전에 열중하는 버릇을 보여 주고 있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사실은 다음과 같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7년 말에 벌써 다음과 같이 썼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의 견해와 의도를 은폐하는 것을 경멸할 일로 본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일체 사회제도를 폭력적으로 전복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굴레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을 보라. 어떤 합법적 번역판에서는 말마디가 일부 빠져 있다.)


1850년에 독일에서의 새로운 투쟁을 기대하면서 칼 맑스는 당시의 독일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무기와 탄약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주어서는 안 된다. … 노동자들은 … 지휘관과 총참모부를 가진 독자적인 프롤레타리아 수비대를 조직하여야 한다. … “임박한 봉기와 그 후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쾰른 재판≫, ≪공산주의자들에게 보내는 맑스의 호소문≫을 보라.)


1851-1852년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일단 봉기가 시작되면 최대의 결단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공세로 넘어가야 한다. 방어는 일체 무장봉기의 파멸이다. … 적의 군대가 아직 흩어져 있는 동안에 그를 불시에 습격해야 하며 비록 사소한 승리라도 매일매일 새로운 승리를 거두어야 하며 … 적이 그대를 반대하여 자기의 병력을 집결할 수 있기 전에 적을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에 알려진 혁명적 전술의 대가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대가인 당통의 말, 즉 ‘용감하고, 용감하고, 다시 한 번 용감하라’는 말대로 행동하라.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우리는 여기에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 “투표용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파리 코뮌의 역사를 상기하여 보라. 코뮌이 파리에서 거둔 승리에 만족하고 반혁명의 소굴인 베르사유로 진공하기를 거절하였을 때 코뮌이 얼마나 평화적으로 행동하였던가를 상기하여 보라. 당신들은 맑스가 그 당시 어떻게 말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래, 맑스는 파리 시민들에게 선거를 호소하였는가? 그래, 그는 파리 노동자들의 무사태평(파리는 전부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었다)을 찬동하고 있었으며 패배한 베르사유파에 대한 그들의 관대한 태도를 찬동하고 있었는가? 맑스의 말을 들어 보라:


파리 사람들은 그 얼마나 민첩하였으며, 그 얼마나 역사 앞에 선도적이었으며, 그 얼마나 자기희생적이었는가! … 6개월간의 기아 … 이후 그들은 … 프로이센의 총검 아래에서도 무장봉기를 결행하였습니다. … 역사는 일찍이 이러한 영웅주의의 실례를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패배를 당한다면 그 책임은 그들의 ‘관대함’ 이외에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 비느와가, 그 다음에는 파리 국민방위대의 반동층이 파리에서 후퇴하자마자 당장 베르사유로 진격하여야 했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은 선량한 마음의 주저 때문이었습니다. 간악한 기형아 티에르가 파리를 무장해제하려는 시도로써 이미 내전을 개시하였는데 마치도 그렇지않은 듯이 그들은 내전을 시작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이것이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생각하며 행동하는 바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무정부주의자들은 여전히 되풀이하여 말하기를 맑스, 엥겔스와 그들의 후계자들은 투표용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폭력적인 혁명적 행동은 시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다시피 이 “비난”도 역시 맑스주의의 본질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무지를 폭로하는 비방일 따름이다.


이것이 둘째 “비난”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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