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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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4월 30일 (토) 05:41 판 (→‎개요)

실체(한자: 實體, 라틴어: Substantia)는 주로 형이상학에서 사용된 용어로, 변화무쌍한 제(諸) 사물의 근저에 놓인, 영속적이며 불변인 것을 의미한다.

실체의 대립물은 우유성(偶有性)이다.

개요

모든 사물, 존재자는 항상 변화한다. 변화하며 갖가지 양태(樣態)를 가지는 수많은 존재자 사이에서 지속적이며 불변적으로 그 규정을 존립하는 것이 실체라고 여겨진다.

실체 개념은 고대부터 있던 개념으로,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플라톤은 오로지 선(善)의 이데아가 실체이며, 현상자(eikona) 및 그것의 모방자(phantasmata)를 허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질료를 이데아가 산출해낸 것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원론적 실체관을 지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실체는 ‘사물의 본질, 실재(實在)’라는 뜻에서 제일의 범주를 이룬다. 그는 《형이상학》에서 실체를 철학의 근본 물음이라 간주하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있는 것’이 말해지지만, 분명히 그 가운데 ‘으뜸으로 있는 것’(으뜸의 존재)은 실체를 뜻하는 ‘(어떠한 것은) 무엇인가’이다. [...] 정말, 예나 지금이나 늘 묻지만, 늘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은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라고, 어떤 사람들이 하나보다 많다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개수에서) 한정된다고, 어떤 사람들이 무한하다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 실체였기 때문이다."[1]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로지 이데만을 실재라고 한 플라톤의 견해에 반대하였으나, 실체에 관한 견해에서는 플라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현실태(entelecheia)에 관해, 질료를 목적하는 형식이 아니라 형식을 목적하는 질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하위 현실태는 상위 현실태의 질료로 되며, 그것은 다시 형식을 목적하는 질료로 된다. 그는 최고의 현실태를 순수형식이라 간주하였다. 형식과 질료의 소재적 근원에 관해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유사한 이원론적 견해를 보였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실체는 보편자·개별자에 관한 모든 신학적 체계 수립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근세에 이르러 등장한 R. 데카르트는 전통적인 실체 개념을 간직한 채로 스콜라적 논변을 비판하였다. 그는 정신을 사유(思惟)의 실체로, 물질은 연장(延長)의 실체라고 하였다. B. 스피노자는 실체에 관한 데카르트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계승였다. 그는 《에티카》에서 만유(萬有)에 관한 ‘실체-속성-양태’라는 산출·운동 원리를 정립한다. 스피노자는 능산적이며 동시에 소산적인, 즉 부단히 운동하며 제 양태를 산출하면서도(능산적), 동시에 그 자신이 산출되어진 수많은 현존하는 것에 대한 규정을 받는(소산적), 이른바 ‘전일적 실체’를 주장하였다.

실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은 이후, 경험주의(J. 로크, D. 흄 등에 의한)와 변증법이 발달하기 전의 모든 철학 분야에서 통용되었다. 이는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대표적으로 엘베시우스와 P. H. D. 홀바흐는 물질을 제 사물의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실체는 형이상학적 개념이지만, G. W. F. 헤겔의 저작에서도 등장하며, 그의 사상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적 관념론에서 실체는 시원에 대한 형식규정으로 간주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형이상학적 실체 개념은 그 스스로가 모순적 대립 운동을 통해 변화·발전하는 물질에 적용되기 어려우며, 단지 제 사물의 근원자를 추상적으로, 형식적으로 일컫는 데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참고 문헌

  •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편 (1989), 《철학대사전》, 동녘.
  • 아리스토텔레스, 김진성 역주 (2007), 《형이상학》, 이제이북스.
  • 바뤼흐 스피노자, 강영계 역 (1990), 《에티카》, 서광사.

같이 보기

각주

  1. 《형이상학》, 1028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