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

좌파도서관

속성(한자: 屬性, 그리스어: ιδιότητες, 라틴어: Attributum)은 어떤 것에 부속되거나 부가된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 이전 철학에서 속성은 실체에 필연적으로 귀속되는 제 성질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였다.

개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에 붙은, 실체에 종속된 모든 규정을 속성이라 하였다.(1030b) 그는 본질적 속성과 우유(偶有)한 속성을 구별하였다. 본질적 속성은 특정한 실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속성(“각각의 물체에 대해서 공통된 술어”)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1)“언젠가 죽으며”, (2)“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다. (1)과 (2)가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에, 두 속성은 본질적 속성이다. 반대로 우유한 속성은 하나의 대상에 우연적으로 나타나는 비본질적 성질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적색 옷을 선호하고, 청색 옷을 선호한다. 적색 옷을 선호하든, 청색 옷을 선호하든 그것은 사람이 성립되냐의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옷을 입지 않아도 사람이라 불릴 수 있다. 옷 색깔의 선호 여부, 옷을 입는 것과 입지 않는 것 등은 사람이라는 실체에 대해서는 우유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1031a-b)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속성은 실체에 부가된 것이며, 실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몇 가지 속성으로는 실체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질료-형상설에 의하면, 속성은 보편자에 있어서는 현실태로서의 개별자, 즉 질료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분필의 본질적 속성이 “딱딱한 것”이라고 했을 때, “딱딱한 것”은 개별적 질료와 개별적 형상이 결합된 개별적 실체로서 현실태이고, 한편으로 그것은 보편자인 분필의 질료이자 속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와 속성은 이후 이어진 스토아 학파의 논리학 및 중세 형이상학에서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형식논리학에서 다루는 실체와 속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근대에 등장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R. 데카르트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실체와 속성에 관한 학설을 계승하여 신을 무한실체, 물질과 정신을 유한실체, 그리고 연장과 사유를 각각의 속성이라고 간주하였다. B. 스피노자는 유한실체는 부정하고 실체는 오로지 신이 유일하다고 간주하였으며, 그로부터 무한한 속성이 산출된다고 하였다. 속성은 실체의 변용이기도 한데, 무한한 속성 중에 인간을 이루는 속성은 연장과 사유라고 하였다. 그리고 연장은 물체라는 양태를, 사유는 정신이라는 양태는 산출한다고 보았다.[1]

G. W. F.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이어진 전통적인 속성 관념을 지양하여 변증법적인 속성 개념을 성립하였다. 《논리의 학》에서 그 내용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속성은 불변의 실체에 대하여 항상 종속되고, 또 그것에 대해 불변인 것이 아니라 다른 규정과 연관하여 실체를 역규정한다. 역규정된 실체는 다시 속성을 규정한다. 실체는 변화·발전하는 속성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으며, 속성 역시 실체의 규정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헤겔에게서 실체는 속성의 활동에 관해서 무관심하고 그것에 대해 불변인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중세 스콜라 철학은 지고의 보편자인 순수형상으로부터 모든 개별실체가 정의되고, 정의된 실체로부터 불변의 속성이 성립된다고 간주하였다. 헤겔은 그와 반대로 실체와 속성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규정과 역규정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본 것이다.

《논리의 학》 「개념론」에서 실체와 속성의 관계는 개념의 운동에서 보편(allgemein)-특수(besondere)-개별(einzelne)이라는 범주로 정식화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형이상학적 속성 개념은 형이상학적 실체 개념과 마찬가지로 쓰이지 않는다. 실체와 속성의 관계는 헤겔 변증법의 계승으로서 보편-특수-개별의 범주로 일반화된다.

F.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에서 근대기 생물학, 특히 유전학의 발달을 근거로 실체와 속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견해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2] 18세기 유물론자인 J. 톨런드가 물질의 속성을 운동과 연장이라고 한 것과는 반대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물질은 운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되는 동시에 운동이 지니는 구체적인 내용, 즉 범주 관계에 따라 사물은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된다.[3] 물질과 운동의 관계를 이와 같이 규정한다면, 물질을 운동에 관한 실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운동을 물질에 관한 실체라고 규정하는 것 모두 실재의 존재 양식을 온전히 담아낸 서술이라 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실체와 속성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수준의 사유의 표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주관적 관념론, 분석철학에서 전제되는 논리 원자론은 실체와 속성의 관계를 집합과 그 유형들로 환원하여 이해한다.[4]

참고 문헌

  • G. W. F. 헤겔 저, 임석진 역 (1983), 《대논리학》, 제2권, 지학사.
  • G. W. F. 헤겔 저, 임석진 역 (1983), 《대논리학》, 제3권, 지학사.
  •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편 (1989), 《철학대사전》, 동녘.
  • M. K. 뮤니츠 저, 박영태 역 (1997), 《현대 분석 철학》, 서광사.
  • 아리스토텔레스 저, 김진성 역주 (2007), 《형이상학》, 이제이북스.

같이 보기

각주

  1. 《철학대사전》, 동녘, p. 717.
  2. 현대 유전학에 의하면 사람속(Homo)은 사람이라는 불변의 실체가 선재하고 그에 따라 제반 속성이 맞춰져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진화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것이다. 전통적인 실체와 속성 개념의 틀에서 보자면, 사람속이 형성되기 전으로서 속군의 속성이 먼저 변화하여 그것이 실체의 변화를 추동하고, 그 변화한 실체가 사람속이 된 것인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과 공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3. 위와 같은 출처.
  4. 《현대 분석 철학》, 서광사, pp. 305-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