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혁명을 옹호하며/제 1절 ~ 제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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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혁명을 옹호하며
제 1절 ~ 제 4절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

인간 사회는 생존을 도모하고 후세를 보존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유래한 협동체제이다. 사회의 성격은 이 사회의 경제가 갖는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경제의 성격은 사회의 생산적 노동 수단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력 발전의 거대한 시대마다 이에 조응하는 명확한 사회체제가 존재한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체제는 지배계급에게 엄청난 장점들을 부여했다.

따라서 특정 사회체제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은 역사에 등장하여 이후 사회 발전에 족쇄가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그러나 어떤 지배계급도 자발적이고 평화적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이성에 기초한 주장이 무력에 기초한 주장을 대체한 경우는 없다. 이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우리가 아니며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혁명의 의미

혁명은 사회질서의 변화이다. 혁명은 잠재력을 소진 당한 계급의 손에서 상승하는 계급에게 권력을 넘겨준다. 봉기는 두 계급의 권력투쟁에서 가장 치열하며 결정적인 순간이다. 봉기는 진보적 계급에 기초하고 있을 때에만 혁명의 진정한 승리를 가져와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 진보적 계급만이 자신 주위로 압도적 다수의 인민을 결집시킬 수 있다.

자연과정과는 달리 혁명은 인간에 의해 인간을 통해 성취된다. 그러나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조건을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았으며 그의 앞길을 필연적으로 인도하는 이 조건 속에서 인간은 행동할 따름이다. 오직 이 때문에 혁명은 특정 법칙들을 따라 진행된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자신의 객관적 조건을 수동적으로 반영할 뿐 아니라 이 조건에 능동적으로 반응한다. 어떤 시기에 이 반응은 날카롭고 열정적이며 대중적이 된다. 기득권 세력의 장벽들은 무너진다. 역사 과정에 대한 대중의 적극적 개입, 이것이 혁명의 가장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나 가장 격렬한 대중 행동도 혁명의 절정에 도달하지 못한 채 데모나 반란의 수준에서 정체할 수 있다. 대중의 봉기는 반드시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에게 권력을 넘겨야 한다. 이때에만 혁명이 승리한다. 대중 봉기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룰 수 있는 고립된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혁명의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진 과정을 대표한다. 그러나 봉기의 필요조건들이 존재한다고 입을 벌린 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사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는 법이다. 밀물 때에 시도하면 성공을 거둔다.”

이미 수명이 다한 사회질서를 쓸어버리기 위해 진보적 계급은 자신의 시간이 왔음을 이해하고 권력 장악 임무를 스스로 설정해야한다. 바로 여기에 의식적인 혁명 행동의 장이 열린다. 의식적인 혁명 행동에는 선견지명과 명확한 계산이 의지 및 용기와 결합한다. 바로 여기에 혁명정당의 행동의 장이 열린다.

“쿠데타”

혁명정당은 진보적 계급의 최상 분자들을 결집시킨다. 이 정당은 방향을 정확히 잡고 사태의 전진과 리듬을 정확히 감지하여 초기에 대중의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진정한 혁명정당이 없을 경우 노동계급의 혁명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봉기와 혁명의 객관적 주관적 요인들의 상호관계이다.

논쟁 특히 이론 논쟁에서 논적들은 상대방이 제시하는 과학적 진실을 모순으로 몰아 그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관례이다. 이 방식을 귀류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와 반대로 모순에서 시작하여 진실에 도달하는 더 안전한 방법을 택할 것이다. 어쨌든 모순은 우리 주위에 너무도 흔해서 이것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가장 최근에 모습을 보였으며 가장 조야한 수준의 모순을 예로 들겠다.

이탈리아의 저술가 말라파르테(Malaparte)는 파시스트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도저히 이론이라고 할 수 없는 파시즘에도 이론가는 존재한다. 그는 쿠데타의 기술에 관한 저서를 출판했으며 당연히 이 저서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 10월 혁명을 “조사”하는데 할애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1917년 러시아의 사회적 정치적 조건과 언제나 연관된 레닌의 “전략”과는 반대로 “트로츠키의 전술은 그 나라의 일반적 조건에 전혀 제한 받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저서의 요지이다! 이 저서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저자의 강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대화들은 레닌과 트로츠키의 정신적 심오함이 자연이 말라파르테 한 사람에게 부여한 것 정도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혁명의 사회적 정치적 전제조건에 대한 레닌의 심사숙고에 대해 말라파르테는 트로츠키가 이렇게 말하게 만든다: “동지의 전략은 유리한 조건들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봉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필요 없다. 봉기는 스스로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봉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필요 없다.”고 그는 말한다. 바로 이것이 진실로 인도하는 모순이다. 말라파르테는 계속 이렇게 주장한다: 10월 혁명은 레닌의 전략이 아니라 바로 트로츠키의 전술 때문에 승리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의하면 트로츠키의 전술은 지금도 유럽 국가들의 평화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의 말을 하나 하나 정확히 인용해보자: “레닌의 전략은 유럽국가들의 정권에 직접 위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전술은 정말이지 실제적이며 결과적으로 영구적인 위험 요인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프웽까레(Poincare)가 케렌스키 대신 임시정부의 수상이 되었더라도 볼세비키의 10월 쿠데타는 똑같이 성공했을 것이다.” 이런 저서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다니 믿기 어려울 따름이다.

정말 “트로츠키의 전술”이 모든 상황에서 똑같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레닌의 역사적으로 조건 지워진 전략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몇 몇의 기술적인 처방만으로도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면 왜 성공한 혁명은 이리도 드물까?

이 파시스트 저자가 지어낸 레닌과 트로츠키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무미건조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발명품들이 적지 않게 판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에서는 [레닌의 생애]라는 저서가 버젓이 내 이름으로 출판되었는데 나는 말라파르테의 전술과 마찬가지로 이 저서에 대해서도 아무 책임이 없다. 마드리드의 주간지 [추적]은 트로츠키가 썼다고 주장되는 이 저서의 몇 개 장 전체를 출판되기도 전에 미리 선보였다. 그런데 이 저서는 내가 동시대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대단히 소중히 여겨왔던 레닌의 생애를 지독하게 모독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날조를 일삼는 자들의 운명은 그들에게 맡기자. 잊을 수 없는 투사이자 영웅인 카알 리이프크네히트의 부친 빌헬름 리이프크네히트는 즐겨 이렇게 말했다: “혁명 정치인은 낯짝이 두터워야한다.” 슈토크만 박사는 그보다 더 표현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우리에게 권유했다: 사회의 상식에 반대하여 행동할 사람은 새 바지로 갈아입는 것을 삼가야한다. 이 두 훌륭한 조언을 염두에 두면서 강연을 계속하겠다.

10월 혁명의 원인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10월 혁명의 문제들을 이렇게 제기할 것이다:

“10월 혁명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가? 좀더 정확히 표현해서 왜 유럽의 가장 후진적인 나라에서 노동계급 혁명이 성공했는가? 10월 혁명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10월 혁명은 역사의 시험대를 통과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시켰는가?”

혁명의 원인을 묻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어느 정도 자세하게 답변할 수 있다. 나의 저서 [러시아혁명사]는 이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이 될 것이다. 이 강연에서는 가장 중요한 결론만을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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