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좌파도서관

르네 데카르트(프랑스어: René Descartes,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 또는 레나투스 카르테시우스(Renatus Cartesius)[1]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이다.

개요

데카르트의 사상은 봉건사회 사멸기 진보적 부르주아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그는 비록 스콜라적 방법론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 하였으나, 봉건적 세습제를 정당화하던 목적론에 치명타를 가했으며, 질료형상설을 비판하고, '홀로 선 질료', 즉 그 자체로 객관적인 실재인 물질이라는 개념을 성립하였다.

철학

데카르트의 철학은 세 가지 주요한 특징을 지닌다.

  • 중세 스콜라 철학의 목적론에 대한 비판
  • 질료형상설 비판,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로서 물질과 정신의 성립
  • 인식주관과 실재 간 관계에서 가(可)인식성 긍정

그는 가능태와 현실태 개념을 부정하고, 물질이 그 자체로, 자연적인 원리에 따라 운동하며, 인식주관과는 독립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데카르트는 인식주관에 의한 실재의 인식이 가능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다. 그는 기계론·결정론을 받아들였으며, 인과율, 사물과 사물간 필연의 원리를 인정한다.

한편으로, 그는 관념론적이기도 한데,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념적 상이 신에 의해 주어져 있고, 신에 의해 관념과 물질의 일치성이 조건지워져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관념과 물질의 일치성은, 관념이 물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물질은 관념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물론적이다.

데카르트는 대표적인 이원론자이다. 《정념에 관하여》를 저술하기 전까지 그는 물질과 정신이 상호 독립적이며, 각각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유물론적 성격과 관념론적 성격이 병존하는 데카르트의 철학은 그 내용에 모순이 일정 존재하며, 인식 이론에서 표상론적 이원주의와 반영론적 일원주의를 오갔다. 이는 귀납주의와 수학적 연역주의에 관한 그의 모순된 견해에서 극히 드러나는데, 그는 모든 지식을 코기토(cogito)에 의해 소급된 기하학적 상(象)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하였고, 오로지 기하학적 연역 방법론만이 확실한 지식을 갖추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떠한 지식의 경우는 실험을 통한 귀납이 필수적임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상은 데카르트 학파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후기 데카르트 학파는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당대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데카르트를 인류 문명의 무한한 진보에 관한 인용 전거로 삼았다.

방법적 회의

우리가 인식하는 감각 경험은 때때로 거짓일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때때로 신기루를 겪거나 착시현상을 겪는다. 따라서, 우리의 일부 감각 경험은 거짓일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잠옷을 입고 난롯가에 앉아 불을 쬐는 생생한 경험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사실은 그것은 꿈속의 경험이었으며, 사실은 침대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처럼 꿈과 현실을 구별해주는 확실한 징표가 없다면,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즉,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이 사실 '꿈' 이어서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도 수학적 사실은 불변한다. 예컨대, 우리가 실제라고 느끼며 경험하는것이 사실은 꿈속에 불과하다고 해도, 2+2=4 와 같은 수학적 진리는 불변한다.

그러나, '악령의 가설'. 예컨대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경험을 조작할 수 있는 전능한 악령이 나를 속이는 경우라면 어떤가? 이 경우, 우리가 참이라고 생각하는 모든것, 즉 수학적 진리인 2+2=4 또한, 악령이 조작한 거짓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론적 회의에 따라 '사실' 이라고 확증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는가? 그렇지 않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식 주체인 바로 '나' 자신은 확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최소한 '나' 라는 인식 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 주체인 '나' 가 없다면 이런것들을 경험할 수 없다. 즉, 인식의 첫 걸음에서 가장 먼저 확증되는 것은 '나 자신' 이다.[2] 그는 이에 따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인식주관의 실재성에 대한 확실성을 통해, 관념적 상(象)을 객관적 실재에 일치시키는 것이 진리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주관과 객관적 실재와의 일치가 가능한 이유는 완전성을 갖춘 관념적 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관념적 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모방한, 그보다 열등한 관념적 상이 존재하며, 전자가 후자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원인과 결과는 맞닿아 있는 관계이며, 역추산이 가능하다. 이를 소급해 올라가면 객관적 실재에 관한 완전성에 이른 관념적 상을 얻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진리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

참조 문헌

  • R. 데카르트, 원석영 역 (2002), 《철학의 원리》, 아카넷.

각주

  1. 라틴어 이름.
  2. "우리는 우리가 의심하는 동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가 순서에 따라 철학을 할 때 인식하는 최초의 것이다." (《철학의 원리》, iv.)
  3. 《철학의 원리》, p.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