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유주의

좌파도서관

사회자유주의(한자: 社會自由主義, 영어: Social liberalism)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자유주의 경향의 일종으로, 독점자본 내 개혁적 분파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개요

철학적으로는 J. 밀, T. H. 그린, L. 홉하우스 등에 의해, 경제학적으로는 K. 빅셀, V. 파레토 등에 의해 수행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수정' 작업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영국 페이비언 협회 내 온건파도 이 작업의 보조자로 참여하였다.

밀은 영국에서의 사회적 병리현상을 분석하여, 그것인 저소득층의 빈곤의 만연화 및 소득의 불평등에 있다고 지적했다. 밀은 자본의 지배 역시 타인에 대한 폭력에 불과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사회 병리현상은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의회가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린, 홉하우스는 기존 자유주의 도덕철학이 가졌던 계몽주의의 이상을 고수, 발전하여 자유주의의 이상이 단순한 소극적 자유의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의 생활 증진으로 대표되는 적극적 자유의 실현에 있는 것이라 보았다. 이들은 기존 자연법적 권리를 경제적 활동 상에서의 자유, 즉 민법적 권리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과 노동자, 농촌의 쁘띠부르주아의 적극적 자유의 보장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린은 이를 도덕의 실재적 내용이라 간주하며, ≪윤리학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일 도덕적 행위가 연속적인 자연현상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면, 이것은 오직 자연적인 선행요인을 가진 채 도덕적 행위를 결정하는 동기 그자체가 오직 자연현상의 사슬 속에서 연결고리가 된다는 가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비록 선행관념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다른 종류의 사건과 구분되기는 하지만, 도덕적 행위가 탈(脫)자연화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덕적 행위가 의존하게 되는 관념들 자체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T. 그린, ≪윤리학 서설≫(1883), 제86절.

다시 말해, 도덕의 실재적 내용은 그것이 자의적인 인간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개별 관념의 상위에 있는 자연활동의 생성물이다. 그린은 인간이 "자연의 원리대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과거 계몽 사상가들이 막연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최종적으로는 "자연의 원리대로 삶"에 대해 긍정한다. 그는 그러한 '자연의 원리'가 곧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 자유의 보장,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 정책의 형성의 근거가 된다고 하였다.

빅셀은 시장 경제가 갖는 내적인 모순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경제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고, 또 경제 실패의 후과를 처리하기 위한 관리통화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J. 롤즈는 ≪정의론≫을 통해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이 돌아가는 '최소 극대화의 원리'를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원리가 어떠한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며, 앞으로의 자신의 상황, 또는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 무지한, '무지의 베일'로 인해 사회 구성원이 심정적으로 동의한 부분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를 사회 계약의 실증적, 심리학적 고찰이라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보장정책 강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현재 사회자유주의의 핵심 논거가 되고 있다.

법학 계통에서는 H. 켈젠이 자연법주의를 비판하고, 실정법주의를 내세웠다. 켈젠은 법과 법률에 대한 기존 자유주의의 형이상학적 경향이 실증적으로 무의미한 논거에 불과하며, 그것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부르주아의 사적 재산에 대한 형이상학적 절대성을 약화시키는, 법학 영역에서의 '개혁'이었다.

역사

자본주의 발전은 자본-임노동 관계의 양적 발전을 동반하였다. 노동자 계급의 조직적 역량의 확대하고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 확대·심화되자 각국 독점자본 중 유화적인 분파는 노동자 계급을 적극적으로 회유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1929년 대공황은 자본주의의 '수정'을 불러왔다. 미국에서 진행된 이 일련의 과정은 자본주의 토대의 고수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금본위제의 사실상의 폐지, 관리통화제도의 상시화, 정부 주도의 재정 투자, 실업 정책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보장정책의 확대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41년 ≪네 가지 자유≫라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가 안전을 염원하며 그리는 미래에는, 네 가지의 본질적인 인간의 자유에 기초한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장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두 번째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장되는 각자 방식으로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세 번째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장되는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세계적인 용법으로 설명하자면 각국 자국민들에게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적 이해를 의미합니다.

네 번째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장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세계적인 용법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나라도 이웃 국가에 물리적인 침략 행위를 할 위치에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군비를 축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 가지 자유≫(1941)

루즈벨트의 연설은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리버럴(Liberal)'이라고 불리는 사회자유주의 진영의 표어로 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는 동시에 소비에트 연방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1949년에는 중국의 민족해방혁명이 완수되었다. 세계의 3분의 1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기지가 되었다. 한편 아랍, 동남아시아 등의 민족해방운동이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계급의 의식화를 촉진하였다. 더 나아가 수많은 식민지·반(半)식민지의 민족해방 역량의 성장은 그 지역에서 수탈을 통해 초과이윤을 확보하던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사회적 모순을 증폭시켰다.

이에 각국 자본은 자국 노동계급에 대한 회유책이 병행되어야 함을 절감하였으며, 사회 및 경제 정책·법 분야에서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 '개혁'의 결과로 노동법은 법체계에서 형식적으로는 민법과 같은 지위에 올라서게 되었으며,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사회보장정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팽창된 각 부르주아 정부의 행정력과 입법적 추진력에 기반한 것이었다.

경제학적으로는 J. M. 케인즈의 유효수요창출이론을 통해 주기적인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는 것이 1970년대 이전 사회자유주의 이데올로그의 정책 함의가 되었다.

1973년 공황 이후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제 공황, 구체적으로는 1970년대를 관통한 만성적 공황이 이어지면서 신자유주의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1] 이러한 우경화된 기조는 오늘날까지 사회자유주의를 정치 활동의 이념적 근간으로 삼는 분파에 짙게 남아 있다. 이는 사회자유주의 분파의 경제 정책이 갖는 비일관성의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적 성격

'사회자유주의'라 불리는 이데올로기는 본래 영국에서는 새자유주의(new liberalism)라 불렸던 것으로, 고전적 자유주의 간 형식적 대립의 산물이기도 하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유 방임이라는 원리에 골몰하여 사회 양극화를 방치하고, 그로 인한 사회 부조리를 양산했음에 반해, 사회자유주의는 사회 정책을 통해 사회 양극화를 개선하여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 수준을 향상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정책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지 않고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그 사회의 적대적 관계를 온존한 채 병행된다. 계급 적대가 심화할 경우 사회자유주의자들은 자본가계급의 당파성을 표출하여 노동자계급을 노골적으로 탄압한다. 결론적으로, 사회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가리우는 독점자본 내 개혁적 분파의 교묘한 이데올로기 전술 또는 그러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사회자유주의의 핵심 계층은 도시의 쁘띠부르주아, 노동조합 내 보수적 관료, 개혁적 국가관료, 지식인으로 되었으며, 그 논리가 자본주의 토대의 온존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부르주아 당파성에 입각해 있다. 따라서, 사회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차용한 분파에 의해 행정권이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전투적 노동조합 및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탄압은 그대로였다.

사회자유주의의 이념적 본질이 독점자본 내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회유로 일관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독점자본 간 모순을 반영한 이념이기도 한데, 독점자본 중 경쟁에서 취약한 독점자본 및 중규모 자본의 이해는 정치적 활동 근거를 사회자유주의에 두는 정치 분파(흔히,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차용하는 분파)의 중요한 지렛대가 된다.

사회문화적으로 문화 활동 규제 정책의 폐지·성평등·소수자 보호 등의 이른바, ‘진보주의’의 경향을 지니는데, 이는 노동자계급이 다양한 계층을 그들의 당파성으로 묶어세우는 데에 대한 적극적인 반격책으로, 여성·장애인·지식인 및 소부르주아(문화상품 소생산자)를 부르주아 당파성에 옭아매려는 독점자본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 이러한 경향은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진보주의’가 대중적인 흐름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사회자유주의자들은 기꺼이 이 경향을 포기할 것이다.[2]

관련 사상

각주

  1. Faulks, Keith (1999). Political Sociology: A Critical Introduction. Edinburgh University Press.
  2. 이와 반대로, 사회주의 진영은 여성·장애인(및 기타 소수자)·지식인 및 소부르주아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하며, 이는 공산주의당에서 최소 강령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으로 된다. 이러한 최소 강령적 투쟁은 전술적 맥락에서 가일층 고려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와 소부르주아의 권리는 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