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신화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문화에 대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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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신화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
낯익은 봉건주의 : 티베트 신화
문화에 대한 의문

우리는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를 통치할 때, 사람들이 사원과 지주들과 함께 만족스럽게 살았으며 인간적이고 평화적인 가르침을 통해 매우 정신적이며, 비폭력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고 들어왔다.


티베트의 종교 문화는 부자인 라마승과 가난한 농민들을 영적으로 결합하는 사회적 결합이자 진통제였다. 이렇게 해서 구 티베트를 하나의 문화적 순수성, 즉 샹그리라라 이해하는 추종자들을 유지해왔다. 이것은 이후 ‘G.K.체스터튼’Chesterton과 ‘힐러리 벨록’Hilaire Belloc 등과 같은 보수 가톨릭계 인물이 묘사했던 이상적인 유럽 봉건시대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그들에게 중세 유럽의 암흑시대는 소작농들이 지주의 지배아래 교회와 깊은 영적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만족했던 세상이다.[1]


또 다시 우리는 특정 문화를 그 자체적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는 그 문화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지배계급에 의해 표현된 대로의 문화를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중세 유럽의 낭만적인 이미지가 그 당시의 현실과 닮지 않은 것처럼 티베트의 샹그리라의 이미지는 그 역사적 현실과는 닮은 점이 없다.


티베트의 냉혹한 현실을 모두 살펴볼 때 구 티베트의 문화는 중립적일 뿐 이라는 이 글 초반부의 관점을 확인하게 한다. 한편으로 문화가 수많은 부정을 정당화하는 보호막으로 작용하면서 타 세력의 커다란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가 안녕을 누릴 수 있다. 티베트 신권통치에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통문화를 조작하였다. 신권 통치는 저항적 사고와 행동을 이단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지주의 우월함과 소작인의 비천함을 선전했다. 부자들은 행복한 삶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살기에 마땅한 존재라고 설파하였고, 전생에서 축적된 덕과 사악함의 업보에 대한 가르침으로 조작되었다. 이 모두가 ‘신의 의지’라고 했다.


속세에 사는 우리 시민들이 보다 전통적인 영적 사회를 규정짓는 행복과 고통, 만족과 관습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왜 우리들 중 몇 몇이 그러한 사회를 이상화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어떻게 포장해도 눈을 파내는 일은 눈을 파내는 일이고, 손발을 자르는 일은 자르는 일이며 농노와 노예를 혹독하게 착취하는 일은 야만적인 계급 불평등이다. 정신적인 유대와 육체적인 속박은 엄연히 다르다. 둘 다 공존하더라도 말이다.


많은 일반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 돌아오길 원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상징하는 사회질서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99년 워싱턴포스트지에서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티베트에서 계속 숭배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


1959년 자신과 함께 도망쳤고 상당수가 그 측근인 부패한 귀족 일당이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컨대 많은 티베트의 농부들은 중국의 토지개혁 당시에 얻었던 자신들의 땅을 귀족 패거리에 양보할 생각이 없다. 한때 노예였던 사람들 역시 그들의 주인이 다시 권력을 쥐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저도 한 때 달라이라마가 지배하던 시대에 살았었습니다.”


한때 노예였던 67세의 ‘왕축’(Wangchuk) 은 말한다. 그는 티베트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인 ‘쉬갓세’ 성지순례를 위해 제일 좋은 의복을 입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도 달라이 라마를 숭배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지만 노예 시절보다는 지금이 더 낫습니다."[2]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불교 승려와 함께 치료 기법을 공부했던 ‘킴 루이스’Kim Lewis는 티베트 사원에서 살았던 여러 명의 여자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루이스가 다시 티베트로 돌아간다면 어떻겠는가 하는 질문에 그녀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루이스는 중국 공산당 통치가 싫어서 그런 대답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곧 이와 달리 대답했다. 그녀들은 티베트에서 ‘4, 5명의 남자와 결혼해야 하고 거의 언제나 임신상태’로 살거나 바람난 남편에게 성병을 옮아 고통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에 더 없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중 특히 젊은 여성들은 ‘교육을 받는 일에 기뻐했고, 어떤 종교와도 전혀 관계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미국인들이 왜 이렇게 순진한지 궁금해 했다.’ 그녀는 그의 할머니가 승려들에게 고통을 당하던 이야기를 했다. 승려들은 그녀의 할머니들을‘지혜의 위안부’로 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깨달음의 수단을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냐 -- 결국 부처는 여자와 함께 지내야 깨달음을 얻는 거야."


루이스와 면담한 여성들은 사원에서 자신들의 어린 자녀를 빼앗기는 일에 분통을 터트렸다. 아이가 엄마를 찾아 울부짖을 때, 승려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왜 엄마 때문에 우는 거야? 엄마는 널 포기했어.... 엄마는 여자일 뿐이야."


루이스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3]


겔룩파 종파내에서 동성연애가 유행했다는 후문이 많이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샹그리라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 정치적 망명을 허가 받은 티베트 승려들은 사회보장을 신청했다. 한 때 루이스 자신도 열성적인 지지자였으며, 서류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들이 의료보호와 건강진단과 함께 매월 550~700 달러에 달하는 사회보장혜택을 계속 지원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이 스님들은 고급 아파트에서 집세도 내지 않고 산다.


그들은 공과금도 내지 않고 팩스, 휴대폰, 케이블 TV 와 함께 제공된 컴퓨터를 이용해 무료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뿐 만 아니라 스님들은 자신들의 계급에 따라 따로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달마 센터는 회원들에게(모두 미국인들이다) 특별 기부금을 받고 있고, 회비에 따라 회원의 일도 달라진다. 쇼핑, 아파트, 화장실 청소 등 스님들을 위해 열심히 잡일을 하는 회원들도 있다. 이런 대접을 받는 승려들은 ‘미국인들은 물질에 너무 얽매여 있다’고 쉽게 비난한다.[4]

물론 중국의 티베트 봉건적 신권정치 타도를 지지하는 것이 중국의 티베트 지배의 모든 것을 찬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늘날 서양의 샹그리라 추종자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반대 또한 진실이다. 중국의 지배를 비난하는 것이 구 티베트의 봉건 지배체제를 낭만화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서양의 불교 추종자들의 공통된 불만은 티베트의 종교 문화가 중국의 점령으로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불교 사원이 문을 닫았고, 그 신권 통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의문을 갖는 점은 침략이전 문화의 요컨대 존중할만하고 순수한 영적 본질에 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과거 잃어버린 천국이라는 신화를 수용하지 않고도 티베트의 종교적 자유와 독립을 지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달라이 라마 개인을 비난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과거 CIA와 여러 보수주의자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든 그는 자주 평화와 사랑, 비폭력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구 티베트 봉건 지배체제의 악행에 대해 비난 받을 수는 없다. 망명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5살이었다. 1994년 멜빈 골드스타인Melvyn Goldstei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어릴 시절부터 고국의 학교 건물과 ‘기계’, 도로 등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티베트 계급의 강제 노역(지주를 위한 농노의 무급 강제노동)과 소작인들에 부과하는 여러 세금을 “더 없이 사악한” 짓 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때때로 세대를 이어 내려온 빚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방식을 혐오했다.[5] 그는 현재 더 나아가 성문화된 헌법, 의회 그리고 다른 민주주의에 필요한 요소를 갖춘 티베트의 민주화를 제안하고 있다.[6] 1996년 달라이 라마는 망명 사회에 동요를 가져올만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경제학 이론에서 자본주의가 오로지 이익과 수익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반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체계는 도덕적 원칙에 기초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부의 평등한 분배와 생산수단의 공평한 이용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계급 뿐 만 아니라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며 소수에 의해 착취되는 희생자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저에게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호소력이 있고 정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반쯤은 마르크스주의자, 반쯤은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7]

보다 최근이었던 2001년 캘리포니아를 방문한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티베트는 물질적으로 너무나 낙후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신적으로는 매우 부자지요. 하지만 영성이 우리의 뱃속을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8]

이것이 구 티베트에 점점 향수를 느끼는 서양의 풍족한 불교도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메시지다. 내가 도전한 것은 티베트 신화이다. 읽어버린 낙원은 실제 농노제와 빈곤에 시달리는 부패한 신권 통치사회였으며,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이 다수의 피와 땀과 눈물로 권세를 누리며 고상하게 사는 곳이었다. 그 땅은 ‘샹그리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1. The Gelders draw this comparison, The Timely Rain, 64.
  2. John Pomfret, "Tibet Caught in China's Web," Washington Post, 23 July 1999.
  3. Kim Lewis, correspondence to me, 15 July 2004.
  4. Kim Lewis, additional correspondence to me, 16 July 2004.
  5. Goldstein, The Snow Lion and the Dragon, 51.
  6. Tendzin Choegyal, "The Truth about Tibet."
  7. The Dalai Lama in Marianne Dresser (ed.), Beyond Dogma: Dialogues and Discourses (Berkeley, Calif.: North Atlantic Books, 1996).
  8. Quoted in San Francisco Chronicle, 17 Ma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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