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신화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1949년 이후의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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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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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이후의 티베트 ~ 오늘날의 티베트 문화

1949년 이후의 티베트


1949년 중국 공산당이 혁명에 성공하여 국민당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 14대 달라이라마와 10대 판첸라마의 대표사절이 티베트의 평화로운 해방을 약속하는 협정에 서명한 후 1951년 10월까지 티베트에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는 1951년 10월 24일 모택동 의장에 전보를 보내 17개의 협정조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3년 후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인민회의에 함께 참석했고 이 회에서 달라이 라마는 상임위원회 부의장으로, 판첸라마는 이 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티베트에 입성한 인민해방군은 농노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일을 처음으로 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티베트 사회를 사회주의나 민주주의 노선에 따라 재건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지주와 지배계급 승려들은 중국의 다른 지역 지주의 재산이 압수되고 소작인에게 분배되었던 것과 같이 조만간 그들의 땅이 재분배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티베트 지주들은 농노들이 인민해방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위협했다.


그러나 농노들은 점차 지주들의 요구를 무시하였고, 중국 공산당에 억압적인 농노제를 폐지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1956년 후반 ‘3대 사원(간덴, 세라, 데프룽)’의 지도자들 중 일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봉건제의 유지를 요구했다. 이 시점에서 인민해방군은 지주의 재산을 압수해 농노에 재분배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결정했다. 이에 지주와 최고위급 승려들은 1959년 3월 ‘티베트 독립정부’를 창설하며 맞섰고 이 들 중 약 7천 명은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라싸에 집결하였다. CIA에 따르면 이 중에는 OSS가 양성해 티베트에 공중 침투 시켰던 170명이 넘는 ‘캄파 특공대’가 있었다. OSS는 이들에게 기관총, 박격포, 소총 그리고 탄약을 지급하기도 했다. 인민해방군은 이틀 만에 라싸 반란을 진압했고, 4천명의 반란자를 체포했다. 반란자들은 판첸 라마가 아니라 달라이 라마를 지지했다. 반란 실패 후 달라이 라마는 반란 주동자들과 함께 인도로 망명했다.


최근의 가장 큰 소요사건은 1966년에 일어나 1976년까지 이어진‘문화혁명’이었다. 문화혁명은 티베트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거대한 집산지에 병합했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와 같이 많은 사원과 사찰을 철폐하고 파괴했다. 결국 집산지는 해체되어 사원과 사찰들은 정부 부담으로 보수되어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티베트에서 벌어진 이러한 사건들을 대하면서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이 고통당하고 있고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하는 것은 서구인들과 재산을 압수당하고 인도로 망명했던 지주들이 조작한 결과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논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티베트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백만 명의 농노들이 농노제라는 족쇄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슬퍼하고 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현재 이들은 자신들의 가축과 농토를 관리하면서 지주의 허락을 미리 받지 않고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고 지주의 의사를 무시한 대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 그리고 비교적 현대적인 병원과 포장도로, 공항과 현대 산업시설을 갖추었다. 인구통계는 이러한 발전에 대한 객관적 지표가 되는데 티베트 인구는 1950년 이후 2배로 늘어났고, 평균 수명은 당시 36세에서 현재 65세로 늘어났다. 물론 자신들의 운명에 불만을 가진 티베트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약간의 조사만으로 이들은 대부분 지주 특권을 잃어버린 가계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과거의 농노였던 사람들이 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많은 증거가 있다.


티베트인들 중에는 한족을(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족 중에도 티베트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일상적 인종적 편견의 문제로 미국인이라면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디트로이트, 보스턴 지역의 흑백 인종 갈등이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독립국가 창설 열망을 대변하지 않는 것처럼 이런 갈등이 티베트 독립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티베트 문화


티베트에 관한 신화 중 높이 평가되는 부분은 티베트 문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달라이 라마의 지지자들은‘중국의 티베트 점령’에 의해 말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화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선입견과 자기만족적 판단으로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의 텔레비전 보급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문화를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문학을 살펴보면 1950년 이전의 티베트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몇 가지 훌륭한 서사시 정도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노도 작가가 될 수 있으며 ‘예담 쉐링’Yedam Tsering 과 같은 시인들, ‘잠펭 캅초’Jampel Gyatso,‘따쉬 다와’Tashi Dawa,‘동드루 왕붐’Dondru Wangbum 등 소설가들을 위시하여 많은 신진 작가들이 훌륭한 작품들을 창조하고 있다.


예술에 관해서는 티베트는 수백 년 동안 사찰을 위한 단순한 종교적 도안 외에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티베트의 종교적 테마와 현대 전원 형상을 융합한 위대한 현대예술가로서 프랑스와 캐나다 모두에서 갈채를 받은‘바마 따쉬’Bama Tashi와 같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현재 티베트는 30개 이상의 직업 가무단체가 있으며 195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페라단과 여러 연극단체들이 있다. 티베트 문화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번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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