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좌파도서관
Karl (토론 | 기여)
잔글 Karl님이 대한민국의 역사 문서를 대한민국/역사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편집 요약 없음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상위문서|대한민국}}
== 선사 시대 ~ 고조선 ==
== 선사 시대 ~ 고조선 ==
== 삼국 시대 ==
== 삼국 시대 ==
16번째 줄: 17번째 줄:


===[[6.25 전쟁]]===
===[[6.25 전쟁]]===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모호하게 그어진 [[38선]]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다. 1950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대대적인 남침을 강행하였다. 인민군은 순식간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 붙이는데 성공하나 이후 전선이 고착되었다. 고착된 전선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북진한 UN군과 한국군에 의해 빠른 속도로 조선은 위기에 처했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다시 빠르게 밀려나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된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모호하게 그어진 [[38선]]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다. 1950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대대적인 남침을 강행하였다. 인민군은 순식간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 붙여 남한 영토 90%를 확보하는데 성공하나 이후 전선이 고착되었다. 고착된 전선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북진한 UN군과 한국군에 의해 빠른 속도로 조선은 위기에 처했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다시 빠르게 밀려나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88번째 줄: 89번째 줄: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5월 10일 취임할 예정이다.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5월 10일 취임할 예정이다.
[[분류:대한민국]]

2022년 4월 21일 (목) 21:09 기준 최신판

상위문서 : 대한민국

선사 시대 ~ 고조선

삼국 시대

남북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역사는 1919년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된다. 임시정부는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편을 들어 싸우기도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

1945년 9월 6일, 건국준비위원회를 통한 조선 인민 공화국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미군정에 의해 묵살되었다. 1946년~1948년 사이에 미군정과 미군정이 임명한 친일관료들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과 건국준비위원회를 대구 10월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항쟁의 진압 등에서 미군정과 국군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으며, 1948년 7월 17일, 미국의 지원과 이승만의 결정에 의해 단독정부가 설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

임시정부의 법통성은 이가 명시되어 있는 헌법과 제헌헌법 외에도 수립 당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뉴라이트 학계와 그에 동조하는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허위사실을 날조하며 역사를 왜곡하여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대대적으로 가르치기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친일파 문제

광복 이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부역자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때문에 반민특위가 결성되었으나 이승만과 친일파의 적극적 공격에 의해 와해되고 말았다.

프랑스나 중국처럼 부역자들은 논란이 있더라도 민족반역자들은 모조리 숙청한 나라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을 제대로 숙청하지 못하였고, 오랫동안 사회적 문제가 되고있다.

6.25 전쟁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모호하게 그어진 38선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다. 1950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대대적인 남침을 강행하였다. 인민군은 순식간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 붙여 남한 영토 90%를 확보하는데 성공하나 이후 전선이 고착되었다. 고착된 전선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북진한 UN군과 한국군에 의해 빠른 속도로 조선은 위기에 처했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다시 빠르게 밀려나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승만 정부

이승만 정부는 부정과 무능이 극에 달한 이승만 정부는 이후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등을 자행하다가 결국 4.19 혁명으로 무너지고 이승만은 하와이로 도주한다.

장면 정부

이후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장면 내각이 성립되었다. 장면 내각은 제1차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제1차 경제발전 모델은 후에 박정희가 계승하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 등이 일으킨 5.16 쿠데타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 때 다시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거의 40년 가량을 야당으로 지내게 된다.


박정희 정부

박정희 정부는 장면 내각의 경제발전 계획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10월 유신으로 절정에 치달은 군사독재는 결국 김재규에 의한 10.26 사건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전두환 정부

이후 잠깐 서울의 봄을 맞이하였으나 박정희가 육성한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가 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노태우 정부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등을 맞아 결국 직선제를 도입하여 제도적으로는 어느정도 민주화를 이룩하였으나 신군부 민주정의당 노태우가 집권하여 군사독재는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 시기와 지금까지를 6공화국이라고 하는데 노태우 정권은 직선제로 당선되었지만 전두환 시절의 집권여당 민주정의당이 그대로 이어진 말그대로 군사 독재 정권이었다.

김영삼 정부

민주정의당과 삼당합당을 통해 김대중을 선거에서 이기고 당선되어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문민정부라는 말의 뜻은 지금까지 장장 32년 동안 존속한 군사독재를 끝내고 문민에 의한 정부라는 뜻이다.

김영삼 정부는 처음에는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해체 등의 개혁정치로 높은 지지율을 구사하였으나 그 이후 IMF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

국민의 정부라고 불리우는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김영삼 정부 말기 IMF의 자금 지원으로 인해서 IMF의 간섭을 받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많은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감행하게 된다. 노동자의 대량 정리해고에는 IMF의 독촉도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 또한 강하게 적용을 했었다. 이로 인해서 당시에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앉게되고 매우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을 통해서 매우 나쁜 일자리들이 많이 양산되어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남북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였고 대표적으로 햇볕정책을 펼쳤으며 매년 이어지는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 북방경제의 꿈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 경의선 연결, 최초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등 여러 수많은 역사적, 발전적 성과를 남겼다.

노무현 정부

참여정부라고 불리는 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이전 정부의 햇볕정책의 발전적 성과는 유지되었고 역사적인 육로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변함이 없었고, 대추리 사건 등이 터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명분없는 미국의 침략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자발적으로 파병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

방송 언론은 장악되었고 극우 종편들이 신설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여론 조작을 위한 댓글부대인 알파팀을 기무사의 기획하에 국정원이 운영하는 체제로 언론인 김성욱을 팀장으로 채용해서 본격적인 여론조작을 시작한 시기였다.

이명박은 이전 정권까지의 햇볕정책 대신에 "비핵개방 3000구상"이라는 대북정책을 내세웠는데 이는 북한에게 비핵화와 개방을 요구하고 만약 그렇게 하면 일인당 GDP를 3000까지 끌어올려 주겠다는 것이였다. 당연히 받아들여질리도 없었고 북한에게는 도발로 받아들여졌음이 당연하고 그리하여 남북관계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결국 재협상한 한미 FTA(광우병 문제 외에 다수 문제가 있었음)까지 날치기를 강행하였고 이에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자원 부분에 있어서는 실제 유전이 거의 없다시피하여 매우 허술한 하베스트를 말도 안되는 매우 높은 가격에 구매를 하여 매우 높은 국가적인 손실을 입힌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대대적으로 게임과 문화산업에 대한 탄압을 가했다. 또한 단기간에 대규모 토목건설을 벌였는데 이는 훗날 총체적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고 어마어마한 환경 변화와 파괴를 유발하여 그 부작용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을 환원하겠다는 청계재단은 실제로 자신의 상속 재산 처리 및 비자금 세탁소로 활용하였다.

박근혜 정부

검찰, 경찰, 국정원, 군 사이버 사령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인터넷 상에서 여론전을 펼친 것으로 밝혀졌으며 박근혜 정부를 찬양하는 글과 댓글을 쓰고 공감 수와 반대수를 조작하는 국정원 알파팀의 조직적인 활동이 있었다. 국정원은 국정원의 활동 자금을 동원해서 대한민국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서북청년단과 같은 우파 조직을 대거 지시 및 지원하였다.

국정원 알파팀 소속의 요원들은 실적에 따라서 임금을 차등 지급 받았으며, 국정원에서 제공한 여론 조작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정부에 찬양하는 글과 반대파들을 비난하는 글을 여론 조작 하는데 집중하였는데, 알파팀 팀장인 언론인 김성욱은 국정원의 높은 실적을 강조하는 데 대해서 고충사항을 토로할 정도로 알파팀은 국정원의 특별한 관리를 받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와 같이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 연예인을 방송에 나오지 못하도록 특별 관리하였다.

기존의 뉴라이트 교과서가 채택되는 곳이 없자 학생들에게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가르치기 위해서 독재 국가들 중에서도 몇 군데 채택하는 곳이 없는 국정교과서를 검증없이 강행하였다.

박근혜 정부 또한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는데 일본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결국 궁지에 몰려 할머니들에게는 알려주지도 않고, 계속 투쟁한 할머니들이 20년 전에 거부한 조건들로, 졸속으로 불가역적 최종종결 위안부 협상을 체결하여 일본에 역사를 팔아먹고야 말았다. 박근혜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열병식에 참가하고 AIIB 졸속 가입을 하여 미국과도 불편한 관계를 만들었으며, 또한 중국에는 사드 강행 배치로 인해서 AIIB 가입으로 얻은 프리미엄 조차도 빼앗길 정도로 매우 심각한 외교적 손실을 불러왔다.

또한 불법적이고 즉흥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하여 경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셀 수도 없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야 말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푼돈도 못되는 돈인데 핵을 만들었다느니 미사일을 만들었다느니 거짓말과 악선전을 유포했다.

2016년 말 박근혜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국정 전반에 관여하여 대한민국 헌정을 유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라는 촛불 집회가 연이어 일어났고 2016년 12월 19일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인용되게 되어서 직무가 정지되게 된다. 이후, 박근혜는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관 전원의 찬성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되게 된다.

문재인 정부

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41.0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5월 10일 취임하였다.

윤석열 정부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5월 10일 취임할 예정이다.